글,씨정원

글은 내 안의 이야기를, 내 몸으로 표현한, 내 삶의 결과물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질서입니다.
추사 김정희가 평생을 세상에 질문하고 몸소 찾은 해답을 글씨로 표현해낸 사상가이자 예술가였습니다.
질문에서 얻은 답이 다시 씨앗이 되어 질문이 되고, 그 질문에서 다시 답을 찾기를 반복하며 성장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성장하는 삶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저마다의 생각을 키워내는 생각의 정원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의원(意園)이라고 하는 상상의 정원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생활은 가난했지만 이 정원에서만큼은 자신이 꿈꾼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조선시대 백과사전인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에는 중국의 문인 황주성이 쓴 『장취원기』를 통해 의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높은 산과 고개로 둘러싸인 장취원은 괴로운 현실 세계에서 벗어난 은자의 정원으로 인식되어
조선시대 문인들의 의원 기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추사 김정희가 남긴 〈세한도〉도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 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뒷 의미를 생각해보면
고된 제주도 유배 생활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벗어나고픈 자신만의 의원을 표현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추사 김정희는 누구보다 큰 생각의 정원을 가꾸었던 예술가였습니다. 그 정원으로 삶의 벗을 초대해 창조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추사가 꿈꾸었던 너른 창조의 정원을 우리는 다시 되살려야 합니다.
현대인 누구에게나 추사의 의원 같은 공간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의 꿈이 실현되는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판이하게 다를 것입니다.
추사 김정희가 추사체로 자신만의 예술정원을 꽃피웠던 이곳 과천에서 추사는 다시 피어납니다.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고 생각을 창조로 발전시킨 추사의 정원을 거닐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24년 10월
제1회 과천추사아트페스티벌 총감독 이근욱